[김종성의 히,스토리]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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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339 작성일 25-12-20 03:29 조회 11회 댓글 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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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한미동맹 지상주의에 제동 걸었던 자주파, 하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1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외교부가 이달 16일 출범시킨 한미공조회의(대북정책 정례협의,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 후속협의)는 문재인 집권기의 한미워킹그룹의 재판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남북관계를 제약해 한반도 긴장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파생시켰다.이 때문에 통일부가 공조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주한외교단 등을 상대로 별도의 대북정책 설명회를 가짐에 따라, 노무현 정부 때의 '자주파 대 사대파' 대결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자주파·사대파라는 표현은 널리 정착되긴 했지만, 당시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자주파에 끌린 노무현 대통령, 하지만...자주파로 불린 사람들이 기존보다 나은 방향을 지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대미자주 노선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이 그룹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중시했다. 이들은 결코 한미동맹을 전복하려 하지 않았다. 이들도 그 동맹의 틀 안에서 움직였다.자주파라는 용어를 썼으면 그 반대편에 사대파를 놓는 게 이치에 맞다. 고려시대 자주파의 대표주자인 묘청의 정적은 김부식이다. 김부식을 사대파라고 부르지 동맹파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노무현 집권기를 지칭할 때는 사대파 대신 동맹파라는 단어가 쓰인다.자주파라는 표현은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쪽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측면이 있는 반면, 동맹파라는 표현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쪽에 대한 폄하 가능성을 예방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용어들이 노무현 정부를 비토하는 쪽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정부 출범 1주년을 앞둔 2004년 1월 16일의 국정홍보처 보도자료에서도 확인된다.이는 두 용어에 대한 노무현 측의 불편한 시각을 보여준다. 보도자료는 "자주파 대 동맹파의 이분법으로 몰아가는 건 잘못"이라며 "참여정부는 한미동맹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협력적·균형적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무현 정부가 기용한 그룹이 자주파다. 자주파와 동맹파는 의견 차이가 있었을 뿐, 크게 보면 한편이었다.노무현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자주파에 심정적으로 끌렸다고 할 수 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의 인터뷰를 담은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노무현이 이라크 파병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비전투병력 파견으로 충족시킨 일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과정에서 참모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했다"라며 다음과 같은 노무현의 발언을 들려준다."나는 그 이종석 차[김종성의 히,스토리] 한미동맹 지상주의에 제동 걸었던 자주파, 하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조현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1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외교부가 이달 16일 출범시킨 한미공조회의(대북정책 정례협의,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 후속협의)는 문재인 집권기의 한미워킹그룹의 재판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남북관계를 제약해 한반도 긴장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파생시켰다.이 때문에 통일부가 공조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주한외교단 등을 상대로 별도의 대북정책 설명회를 가짐에 따라, 노무현 정부 때의 '자주파 대 사대파' 대결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자주파·사대파라는 표현은 널리 정착되긴 했지만, 당시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자주파에 끌린 노무현 대통령, 하지만...자주파로 불린 사람들이 기존보다 나은 방향을 지향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대미자주 노선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이 그룹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를 중시했다. 이들은 결코 한미동맹을 전복하려 하지 않았다. 이들도 그 동맹의 틀 안에서 움직였다.자주파라는 용어를 썼으면 그 반대편에 사대파를 놓는 게 이치에 맞다. 고려시대 자주파의 대표주자인 묘청의 정적은 김부식이다. 김부식을 사대파라고 부르지 동맹파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노무현 집권기를 지칭할 때는 사대파 대신 동맹파라는 단어가 쓰인다.자주파라는 표현은 남북관계를 중시하는 쪽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는 측면이 있는 반면, 동맹파라는 표현은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쪽에 대한 폄하 가능성을 예방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용어들이 노무현 정부를 비토하는 쪽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은 정부 출범 1주년을 앞둔 2004년 1월 16일의 국정홍보처 보도자료에서도 확인된다.이는 두 용어에 대한 노무현 측의 불편한 시각을 보여준다. 보도자료는 "자주파 대 동맹파의 이분법으로 몰아가는 건 잘못"이라며 "참여정부는 한미동맹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협력적·균형적 관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무현 정부가 기용한 그룹이 자주파다. 자주파와 동맹파는 의견 차이가 있었을 뿐, 크게 보면 한편이었다.노무현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자주파에 심정적으로 끌렸다고 할 수 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의 인터뷰를 담은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는 노무현이 이라크 파병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비전투병력 파견으로 충족시킨 일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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